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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 요코미조(Miyuki Yokomizo)

미유키 요코미조(Miyuki Yokomizo)

실에 유화물감을 얹고, 그것을 퉁겨 캔버스에 수차례 흔적을 남긴다. 반복적인 행위로 그은 무수한 수직선과 수평선은 관람객에게 새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2월 22일부터 3월 20일까지, 청담동 네이처포엠에 위치한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요코미조 미유키의 개인전이 열린다. 평면 작품 13점을 선보이는 전시에 앞서 그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뜨개질같이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장차 디자인이나 공예를 공부해야겠다 생각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1988년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독일의 설치미술 작가 볼프강 라이프(Wolfgang Laib)의 작품을 만났죠. 전시장 바닥에 노란 꽃가루가 융단처럼 깔려 있었는데, 그 노란빛이 벽과 천장에 반사되어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어요.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는 듯한 신기한 기분이었죠. 당시의 황홀한 경험이 저를 미술가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다마 미술대학(Tama Art University)에서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그때의 배움과 경험이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재학 당시 일본 미술계에선 ‘모노파’의 흐름을 이어받아 ‘어스워크(earthworks)’가 유행했어요. 역동적이고 규모가 큰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활발히 열렸죠. 그 시류의 영향을 받아 금속 조각을 전공했지만, 금속 특유의 중량감과 가공의 어려움은 당시 제게 버겁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깨닫고,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설치 작업에 매진했는데, 요새는 평면 작품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설치 작품과 평면 작품은 일견 별다른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평면 작품을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Bath Room’(1995년)이나 ‘A Breath of Water’(2005년) 같은 설치 작품과 평면 작품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순한 형태를 띠고, 규칙적인 반복 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다만 설치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철거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 기억 속에만 남게 되는데, 기억이란 건 애매하고 옅어지기 쉽죠. 거기에 아쉬움을 느껴 평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평면 작품을 처음 선보인 건 2012년, 항구도시 고베의 롯코산에서 열린 예술 축제 ‘롯코 미츠 아트(Rokko Meets Art)’에서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평면 작품은 입체와 평면을 조화시킨 설치 작품 ‘Between the World and the Other World’의 일부였어요. 그 후로는 평면 작품을 독립시켜 따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규칙적인 반복 작업으로 이루어진 ‘A Breath of Water’.

이번 개인전의 출품작도 평면 작품입니다. 특이하게도 ‘실’로 작업했다고요. 작업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우선 캔버스 위에 실을 팽팽하게 고정해요. 그다음 실로 유화물감을 얹고 손가락으로 퉁기죠. 그러면 캔버스에 실에서 물감을 퉁긴 흔적이 남습니다. 실의 장력과 퉁기는 위치, 손가락으로 튕기는 강약, 물감의 점성을 고려해 제작해요.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수히 겹친선과 미세하게 흩날린 물감의 흔적이 겹쳐 보이게 됩니다.

붓으로 그릴 수도 있을 텐데, 왜 실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나요? 선을 긋는 데도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회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붓을 사용하는 건 고려하지 않았어요. 제 작업은 깎고, 새기고, 두드리는 조각적 측면이 강해요. 여기서 ‘조각적’이란 단조로운 작업의 반복, 신체성을 강조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를 나타내기 위해 여러 도구를 사용해봤지만, 실을 반복적으로 퉁기는 게 가장 조각적인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미술비평가 가토 도시로(Toshiro Kato)가 작가님의 평면 작품을 두고 ‘조각적 페인팅’이라 한 것도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저는 평면 작품을 ‘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완성한 결과물이 회화성을 띠는 것일 뿐이죠. 정리하면 ‘회화 같지만 회화가 아니다. 조각 같지 않지만 조각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가님 작업의 핵심은 행위의 끊임없는 ‘반복’인 듯합니다. 여기엔 어떤 의미가 담겼나요? 반복은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입니다. 사실 저도 언제 손을 멈춰야 할지, 작품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잘 모르겠어요. 또 한 작품을 완성하더라도 곧 다음 작품을 제작하기 때문에 반복에는 끝이 없다고 할 수 있죠. 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도 계속되는 겁니다.

평면 작품은 한국의 단색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단색화 작가들 역시 특정 행위를 반복해 미니멀리즘 회화를 만들거든요. 특히 이들의 작업 방식엔 수신(修身), 수양(修養)의 의미가 담기는데, 작가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반복적 작업은 때로 신체적 고통을 동반하기에 어느 정도 수신, 수양의 의미가 담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를 의식하며 작업하지는 않아요. 직접적 영향을 받은 건 아니지만, 한국의 단색화에 공감하는 지점이 여럿 있습니다. 이를테면 선들이 춤추는 듯한 박서보 작가의 ‘묘법’ 시리즈는 제게 ‘그린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종현 작가의 물감을 점토처럼 사용한 작품을 보고 물감의 사용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고요.

출품작 중 유독 빨간색 작품이 많습니다. 이 색을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 자체로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빨간색은 피, 불, 태양, 빛과 같은 이미지가 자연스레 연상됩니다. 이런 이미지를 좋아해 자주 쓰는 편입니다. 평면 작품뿐 아니라 2003년 설치 작품 ‘Red Cage’도 피와 생명을 연상시키는 빨간 실로 작업했죠.

이번 전시에서 ‘Weave Words’, ‘Blank Map’, ‘Line’, ‘Veil’이라는 네 종류의 평면 작품을 선보입니다. 각 작품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초창기 평면 작품이 ‘Weave Words’, 그리고 조금 뒤에 제작한 작품이 ‘Blank Map’입니다. 이들은 각각 섬세함(密)과 거침(粗)이라는 상반된 특성을 지니고 있죠. 최근엔 이 둘을 집약한 ‘Line’만 제작하고 있습니다. ‘Veil’은 무채색 작품에 붙인 제목이고요. 사실 작품 제목은 제 의식의 변화에 따라 바뀐 것에 불과해요. 네이밍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전시장에 온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요? 한 가지를 콕 집어 말하긴 어려워요. 사람마다 사고방식이나 느낌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다만 제 작품이 어떤 계기가 되어, 각자 마음속에 있는 드넓은 세계를 발견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제 작품의 의미 역시 무한하게 확장되겠죠. 그건 정말 근사한 일일 겁니다.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4월에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평면 작품과 설치 작품을 함께 배치할 생각인데, 제 작품 세계를 어떻게 하면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여드릴지 고민하고 있어요.

※전시 일정 : 2월 22일~3월 20일(토·일요일·공휴일 휴관), 노블레스 컬렉션
※문의 : 02-540-5588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진행 박소희, 임슬기, 명혜원  코디네이션 마혜리  사진 박원태  스타일링 이지현(프리랜서)